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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과 세자는 각각 27명이다. 왕중에 갑작스런 죽음 탓으로 독살설이 있는 왕은 7명이나 있고, 순탄하게(?) 왕이 된 세자는 15명 뿐이다. 나머지 12명의 세자는 왕이 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으며, 그 중 살해되거나 폐위된 경우가 다섯, 병사한 경우가 여섯, 왕조의 멸망으로 왕이 될 수 없었던 경우도 하나있다. 부모의 업보 때문에 목숨을 잃은 두명의 세자도 포함되어 있다. (독살 되었다고 하는 추정하는 왕은  인종, 선조, 효종, 현종, 경종, 정조, 고종이 있다)

세자는 국본이라고 불렀으며, "나라의 바탕, 국가의 근본" 이라는 의미다.
세자는 원칙적으로 적장자, 곧 왕의 맏아들에게 돌아가나 이 원칙은 원칙일 뿐이다.
세자 책봉은 태어나자마자 되는 것이 아니라 보통 5~8세 정도에 했으며, 국왕만이 부여하는 일종의 '벼슬' 이며, 신중한 정치적 고려 끝에 결정되는 '자격' 이다.
조선의 최초의 세자 또한 적장자를 지키지 않아 왕자의 난에 이르게 했으며, 인조는 적장자인 소현세자를 미루고 미루다 결정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27명의 왕중에 아버지와 함께(왕과 세자) 폐위되어 궁에서 쫓겨난 두 왕은 누구일까?
아버지와 생각이 달랐어도 죄는 함께 받은 두명의 왕과 세자가 있다.  바로 연산군(아들 이황)과 광해군(아들 이질)이다.

연산군의 아들 이황은 정비신씨사이에서 연산군 3년(1497)12월에 태어났다. 연산군 8년 9월에 세자 책봉을 했고 당시 나이는 6세이다. 연산군은 세자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일을 싫어했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연산군 12년(1506) 9월 세자(당시 10세)와 함께 폐위 당했으며, 강원도로 유배된 후 폐세자는 곧 처형당했다.

광해군 맏아들 이지는 선조 31년(1598) 12월 태어났다.
연산군과 달리 광해군의 자식사랑은 각별해 세자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다보니 국가재정과 민생에 무리를 초래할 정도였다고 한다.
광해군 15년(1623) 3월 인조반정으로 인해 폐위당했으며, 폐세자는 강화도에 유배 후 얼마 후 죽었다. (최근에는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를 하고 있다)

연산군광해군의 세자는 아버지로 인해 자기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말았다.




조선시대 최초의 세자와 마지막 세자는 둘다 왕이 되지 못했다.
최초의 세자, 의안대군 이방석이 왕이 되지 못했으며, 마지막 세자(이은)도 왕조 자체가 망했기에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이방석은 두 번째 부인인 강씨 사이에서 태어놨으며, 당시 이성계는 48세였고 맏아들인 이방우는 29세였다. 늘그막에 본 이 막내아들을 유난히 귀여워 했으며, 그를 세자로 두었기에 나중에 왕자의 난이 발생하게 되었다. (정도전과 이방원의 싸움)
결국 조선왕조 최초의 세자는 살행당했다고 한다.

고종은 일본의 압력으로 퇴위 되었고, 병약한 순종은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몸이었다. 결국 순종의 이복동생이었던 '이은'을 세자(당시 황태자,대한제국 시대)로 지목했다.

영친왕은 황태자가 된 지 일년도 안 된 1907년에 일본의 볼모로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다. 이후 일본 황족인 나시모 토미야 마사코(한국명 이방자)와 결혼까지 시켰다. 이후 일본군 장교까지 지내기도 했다.

고종의 계보



이 책은 조선시대에 '왕이 못된 세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27명의 세자중에 왕이 된 세자는 15명이었다고 한다. 왕이 못된 세자는 12명이나 될 정도 병이나 사고 같은 피치 못할 운명도 있었지만 뭔가 세자 제도의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저자의 생각을 담은 책이다. 당쟁 때문에 죽음에 이른 사도세자, 부모에게 버림 받은 소현세자도 있을 거다.




왕이 못 된 세자들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함규진 (김영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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